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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단의 아들 권영은 18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 뒤 비교적 순탄한 벼슬살이를 계속했습니다. 충렬왕이 퇴위하자 충선왕이 즉위하여 광정원, 사림원 같은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개혁정치(?)를 펼치게 되는데, 권영은 사림원의 시강학사가 되어 충선왕을 돕게 됩니다. 사림원에는 권영 말고도 이진(이제현의 부친), 이승휴, 박전지 등이 근무하며 충선왕을 도왔는데, 충선왕은 이들을 각별히 총애하며 밤늦게 어울려 술을 마시며 정치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충선왕의 천하는 7개월여만에 끝나버리고 다시 충렬왕이 복위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대 숙청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이승휴, 박전지 등은 벼슬자리에서 짤렸다는 기록이 분명히 있는데 권영은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좌부승지로써 관리 선발과 임명을 주관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안동 권씨 집안이 충렬왕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커진게 아닌가 하는 상상도 잠시 해 보았는데 그건 너무 지나친 것 같고, -_- 하여간 충선왕이 퇴위한 뒤에도 권영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충렬왕이 밀려나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충선왕이 재즉위하자 권영은 다시 충선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이 무렵에 이름을 권'영'에서 권'부'로 바꿉니다.) 충숙왕 때에는 최고 재상직이라고 할 수 있는 영도첨의사사사(신돈이 받았던 그 벼슬입니다.)까지 승진했습니다. 권부의 아들 6명과 사위 3명이 모두 군(君)으로 책봉되기까지 했구요. 이것이 바로 안동 권씨의 2가지 자랑거리 중 하나인 '1가 9봉군'인데, 이 '1가 9봉군'은 바로 충선왕의 각별한 배려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권부라는 사람의 역사적 의의는 단순히 충선왕의 총애를 받아 재상이 되었다는 점에 있지 않지요. 주자의 [사서집주]를 고려에서 출간하게 한 사람이 바로 권부였거든요. 그래서 [고려사]에서는 東方性理之學自溥(동방의 성리학은 (권)부에게서 시작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향으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아 성리학을 발전시킨 사람이 백이정, 이제현인데, 백이정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권부의 부친 권단의 문생이었고, 이제현은 권부의 사위입니다. 안향도 유경의 문생이라는 점에서는 안동 권씨 집안과 간접적인 연관이 있구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반도에 최초로 들어온 성리학은 안동 권씨 집안의 가학(家學) 비슷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라는 조심스런 추측도 해 봅니다. -o-;;;;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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