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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어제 저녁에 쓰려고 했는데 이상한 글이 하나 올라오는 바람에..... -_-;;;;
이 글은 미사흔이 내물왕의 장남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대한 정황근거를 채집하면서 쓰여졌다. ○元年, 三月, 與<倭>國通好, 以<奈勿王>子<未斯欣>爲質.=> 실성왕이 즉위하자 제일 먼저 미사흔이 숙청된다. 내물왕의 공식적인 장남인 눌지가 숙청되는 때는 이때부터 15년이나 지난 다음이다.
=> 복호와 미사흔의 귀환 과정은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과 [삼국유사] <내물왕 김제상> 설화에 잘 나와있다. 박제상은 미사흔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보다 더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한다. -_-) ○十七年, 夏五月, <未斯欣>卒, 贈舒弗邯.=> 서불한이 추증된 최초의 사례이다. 이전까지는 고인에게 서불한이 추증된 사례가 없었다. 그리고 서불한에 임명된 사람들은 내정이나 군사 분야에서 한 가닥씩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석우로) 미사흔 본인은 눌지왕과 형제 사이이기는 하지만 국정운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적은 없다. 그리고 눌지왕의 또 다른 동생이라는 복호는 이러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四年, 春二月, 王納舒弗邯<未斯欣>女, 爲妃.=> 미사흔이 433년에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왕비가 된 미사흔의 딸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세를 전후한 나이였을 것이다. (어쩌면 재혼? -_-) 왜 이렇게 나이든 -_- 여자를 왕비로 맞아들였을까? 개인적으로는 권위있는 집안의 여인을 왕비로 맞아들여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 결론 : 아무래도 미사흔이 내물왕의 장남 같은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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