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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께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 트랙백한 글에서 밝혔듯이 강감찬 장군은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26년간 전혀 [고려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그 사이 무슨 관직을 거치며 무슨 경력을 쌓았는지는 [고려사]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공백을 메꿔줄 수 있는 기록이 아주 없진 않다. [용재총화],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문총화], [해동이적] 등의 책들에 지방관 강감찬이 행한 여러 가지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용재총화]와 [해동이적]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설화가 실려있다. 강감찬이 한양 판관이 되어서 한양부윤(또는 한양 유수)를 보좌하게 되었을 때였다. 당시 한양 사람들은 호랑이의 출몰로 마음놓고 살 수가 없었다. 강감찬은 부윤(유수)에게 부탁하여 북동(또는 북문 밖 골짜기)에 있는 승려를 불러오게 했다. 승려가 도착하자, 강감찬은 승려에게 왜 사람들을 괴롭히느냐고 꾸짖었다. 부윤(유수)은 멀쩡한 승려를 가리켜 호랑이라 한다며 강감찬을 비웃었지만, 승려가 그 자리에서 호랑이로 변하자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랑이는 강감찬의 꾸짖음을 받아들여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고, 한양 사람들은 더는 호랑이 때문에 걱정하며 살 필요가 없어졌다.이 설화에는 몇 가지 보충할 점들이 있다. 먼저 짚어볼 것이 과연 그 때에도 이 지역을 '한양'이라고 불렀겠는가 하는 점이다. [고려사] <지리지>를 보니 '한양'이란 지명은 신라 경덕왕 14년(755년)에 처음 등장하는데, 고려 초에 '양주'라고 지명을 변경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성종 2년(983년) 2월에 고려사상 최초의 지방관제 정비라고 할 수 있는 12목 설치가 이루어진다. 후삼국 통일 이후 50년 가까이 지나서야 이루어진 지방관제 정비이니 꽤 늦은 셈이다. 이 때는 물론 '한양'이 아닌 '양주'였다. (확인을 정확히 못했는데, 강감찬 호랑이 퇴치 설화를 기록한 어느 문헌에는 강감찬의 벼슬을 '양주 목사'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삼한벽상공신 강궁진의 아들인 강감찬이 36세의 나이로 장원급제를 한다. 따라서 강감찬은 '한양'이 아닌 '양주'에 부임했을 것이다. 당시의 양주는 지금의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 중북부 일대까지를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을 관할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전쟁을 벌일 때 각지의 호족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얻은 바 있었는데, 삼한벽상공신 칭호는 주로 그 호족들에게 주어졌다. 강궁진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 나름 자리잡고 있었던 호족이었고, 강감찬은 그 아들이었다. 성종 입장에서는 양주를 다스릴 관리로 강감찬이 적임자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해당 지역 호족의 아들이고, 장원급제를 통해 나름의 유교적 소양도 갖추었음이 증명된 인물이니, 그 이상의 적임자가 또 있을까? -o-;;;; 강감찬 호랑이 퇴치 설화는, 착실하게 중앙집권화를 진행시켜가는 고려 정부의 모습과, 유교적 소양을 통해 중앙귀족으로 편입되어가는 지방 호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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